스티브잡스나 철학자들은 '오늘 죽는다면' 에 대해서 생각할 때 열심히 살 수 있고 진심을 다해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오늘 죽는다면 내가 해야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모든 돈을 다써서 피자 치킨을 시켜먹고 죽는 것이 가장 이득이 된다.
그리고 주변을 정리하고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조금 하는 등 그런 사소한 일처리를 할 뿐이다.
매일 '오늘 죽는다면' 이라는 태도로 산다면
매일 매일이 하루단위로 끊어져서 별것 아닌 허접한 삶이 지속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저 조금 감성적이고 센치해질 뿐이지, 내가 어떤 것을 할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
그저 정리할 뿐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랠 뿐이다.
끝났기 때문이다.
희소한 것은 써버리게 되어있다.
냉장고에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고기가 있다면 먹기 마련이다.
아끼지 않게 되어있다.
하나밖에 안남았기 때문이다.
나를 써버리고 소비하고 낭비하고 파괴할 수 밖에 없다.
멋있는 척 하지말자 허접한 생각팔이 철학자들아.
오늘 죽지 않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람은 절대로 오늘 죽는다고 가정할 수 없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절대로 상상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확률이 너무나도 낮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설득하려고해도 무의식적으로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정이란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오히려 정반대에 있다.
오늘 죽는다면이 아니라, 내가 영생한다면 이라고 상상해야만한다.
영생은 상상이 가능한 부분이다.
실제로 어떤 초 과학기술이 발견되서 정말로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꼭 영생이 아니더라도 1000년을 사는 등 기간이 길어질 수 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불확실에 있고 미정되어있기 때문에 비로소 '상상'이 가능한 영역이다.
만약 영생한다면 사람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생각하게 될까?
반드시 아끼게 되어있다.
건강을 생각하고, 미래와 후대를 생각하게 되어있다.
당연히 내가 그 미래에 갈것이기 때문이다.
아끼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다.
내가 10년이 아닌 100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비로소
억압하는 고통에서 해방되고자하는 동기가 부여된다.
100년동안 고통을 받을 생각이 곧바로 동기로 전환이 되는 것이다.
조금 살다 죽겠지 라는 허접한 마음과는 다르게
뭔가를 정갈하게 하고, 정교해지고 성실해지고 집중하게 되기 마련이다.
영생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나의 모든 행동이 세상에 기록되고 반영된다고 생각해본다면
영생이라는 개념이 헛된 허상이 아닌 실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지, 동영상, 미래에는 인공지능이나 NFT 토큰 등으로 영원히 남는 어떤 개념들이 점점더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점점더 나자신을 아껴야한다.
나라는 범위를 매우 좁은 범위가 아니라 세계로 먼 미래로 확장해야한다.
그래야 아끼기 시작한다.
조심하고 정교해진다.
무언가를 하기 시작한다.
전체를 생각하고 장기 계획을 세우며 빌드업을 한다.
그렇기에 큰 작품이 나올 수 있는 법이다.
인생을 한없이 길다고 생각하자.
그럴 때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