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격투게임에서 콤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고수가 되지 못한다.
춤을 추는 사람들도 안무를 짤 때 매력적인 동작이 한번 두번 세번 연속으로 나올때 미친듯이 감탄하고 환호하게 만들어진다.
개그를 하는 사람들도 한번 웃겼다가 그다음 한번 더 연속으로 웃기면 미친듯이 웃기기 시작해진다.
할 수 있을 때 집중해야한다.
메시가 골을 넣을 때처럼 어슬렁거리다 기회가 오면 미친듯이 달려가 조져야하는 것이다.
이길 수 있을 때 미친듯이 이겨야한다.
컨디션이 좋을 때 미친듯이 계속 해야한다.
이것은 안티프래질의 작동 원리와 동일하다.
콤보는 위키백과의 정의처럼 '독립적인 행동을 취했을 때보다 월등한 이익을 낳는 연속 동작'이다.
복리로 늘어나는 수익이기 때문에.
월등하기 때문에 그것은 필수다.
내 인생에서 콤보를 어떻게 사용해야할까?
1. 개인의 일상에서의 적용법을 생각해보자.
기분이 좋은 날에는, 계속해서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연속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우울한 날에 그 감정을 없애고 해결하려고 발버둥치기보다는, 차라리 에너지를 아껴두고 카드를 아껴두었다가
기분이 좋은 날 좋은 일이 일어나는 일에 꺼내드는게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알맞다.
예전에도 글로 한번 썼지만 치킨을 시켜먹을거면 축구 경기가 시작한다고 시키는게 아니라
게임을 이겼을 때 혹은 게임에 이기는것이 확실할 때, 혹은 경기내용이 정말 기분좋고 재밌을 때 시켜야 정답이다.
물론 축구경기가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기뻤기에 그것을 연계하는 느낌일 수도 있지만 게임의 내용에 따라 그 콤보는 끊킬수 있기 때문에 확실한 방법을 추구해야만한다.
그것이 최대한 길게 이어지도록 배치해야한다.
2. 개인의 진로에 대해서 적용해보자.
나는 정보보호학과를 나왔는데 갑자기 의류와 관련된 일을 한다면?
그것은 콤보가 될 수 없다. 연계가 될 수 없다.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은 컴퓨터와 관련되어있기 때문에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올바른 콤보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생각을 확장하여 '보안요원을 위한 안전복' 혹은 호신용품, 안전용품 등에 종사한다면 내 대학 전공과 훌륭한 콤보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심리적인 이유에서든 물리적인 이유에서든, 개인의 가치관과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이기에 이러한 콤보는 매우 중요하다.
영감을 주는 애니메이션 감독 이시즈카 아츠코의 진로 선택방법을 보자.
어릴 때는 사실 애니메이션과 깊은 인연은 없었다고 한다. 세 살 때부터는 전자 오르간에 열중하여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해 토카이 & 호쿠리쿠 지역의 콩쿨에서 입상했고, 중학교에서는 미술부에 소속되어 유화를 그렸고,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은 연극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후 아이치 현립 예술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주변의 실력에 압도되어 낙담해 위궤양까지 걸렸다. 그래도 뭔가를 만들지 않으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음악과 그림과 이야기를 짜 맞춘 애니메이션에 도전했다. - 나무위키 발췌
음악 조금, 미술 조금, 연극 조금, 디자인 조금 했던 이시즈카 아츠코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일까?
진로를 찾지 못하였기에 계속해서 어떤 것이 나의 진로인지 새로운 것을 찾아봐야할까?
그런게아니라 오히려 그 조금 조금들을 모두 하나로 연계해서 하나로 맞춰냈다.
그 조금 조금들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영역에서는 단 하나도 버릴게 없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기능한다는 것이 처음 저 글을 봤을 때 소름이 돋을 정도 였다.
이왕 콤보를 할꺼면 단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연계할 수 있고 모든것을 관통하는 콤보를 이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단 한순간도 버리지 않는 추상적인 방향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3. 다른 사람들과의 콤비네이션
나 혼자만의 콤보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콤보도 중요할 것이다.
나 혼자 독립적인 능력을 내는 것보다 약간의 능력만으로 월등히 큰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당연히 너무나도 중요하다.
나를 줄이고 적게 하는 것만으로 그 콤보를 맞출 수 있다.
나는 이런 사람 정말 많이 봤다.
재밌게 웃고 이야기 했다가, 정적이 흐르는 순간 갑자기 일부러 걱정되는 일을 머릿속에 넣고 인상을 찌뿌리거나 '아 씨발..' 하는 욕설까지 할정도로 극적이게 상태가 변환되면서 마치 자기를 걱정해주길 바라는 애새끼같은 태도를 보인다.
혹은 일을 같이 잘 마무리하거나 좋은 날을 보냈다가, 다음 날에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정색하고 모르는 사람 대하듯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얘가 나랑 재밌게 이야기해주니까, 내가 걱정되는 일을 생각할떄도 위로해주겠지. 라는 간악한 마음일 것이다.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스트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남녀 비율차이는 전혀없다.
즐길 때 즐기지 못하는 개찐따 같은 사악함.
처음 이런 사람들을 보면 당연히 '어 왜이러지? 내가 뭐 잘못했나?' 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콤보의 원리에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은 그냥 어떠한 경우에도 쓰레기이기 때문에 벗어나면 된다.
아무리 걱정되는 일이 있다고하더라도, 재밌고 행복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 콤보를 끊어낼 정도의 힘을 가진 걱정은 없다.
그 콤보를 이어나가기만하면 걱정은 사라질 정도의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이런 행동을 할 때도 많았던 것 같다.
재밌는 영화를 보고 난뒤 이상한 죄책감에 휩싸여 '아 재밌었다. 근데 불안하니까 이제 공부해야지' 라는 태도.
혹은 반대로 '아 공부 힘들었다. 그러니까 이제 치킨 시켜먹어야지' 라는 보상심리적인 태도.
그 뚝 뚝 끊키는 허접한 삶의 태도 덕분에 얼마나 많은 잠재적 이익을 내다 버렸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친구가 밥을 사주면, 커피는 당연히 내가 사야하니까 친구를 만나지 말자던지 하는 회피적인 자폐증.
그냥 친구가 밥도 사고 커피도 사주게하고 나중에 나도 그렇게 한번 해주면 될텐데?
너무 많이 받았으니 겸손하게 사양하는 멍청한 노예의 태도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것일 텐데.
그리고 나도 그 혜택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갚으면 되는 건데.
끊어내야할 것은 지속하고
지속해야할 것은 끊어낸다면 삶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지속해야하는 것은 지속해야만한다.
기쁜 것은 지속되어야한다.
잘한 것은 지속되어야한다.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