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떠오를 정도면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상태다. 왜냐면 10초정도 안에 구글에 들어가 검색하면 답을 찾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질문을 가진것인가? 답을 가진 것인가? 구별하기 힘든 양자적인 진동이다. 기술이 발전할 수록 질문과 답의 차이가 점점더 줄어든다.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거리가 좁혀진다. 질문을 한 순간 -> 수단과 방법을 찾게 되는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과거 시대에도 똑같은 메커니즘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단과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 답을 빠르게 얻게 될 뿐이다. 답이 어딘가에 있다면 질문을 가진 순간 언젠간 답을 얻는 메커니즘은 똑같다. 그렇다면 구글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질문이라면 어떨까? 그건 마치 과거시대의 사람들이 질문을 하는 것..
생각하기/스피릿 툴 검색 결과
제 3의 눈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눈이다. 말은 미스테리하게 썼지만 그렇게 신비로운 것은 아니다. 제 3의 눈이란 내가 남자라면 여자의 눈이고, 내가 여자라면 남자의 눈이다. 남자가 보기엔 여자들은 굉장히 횡적으로 모든 것을 아우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가 보기엔 남자들이 모든 여자를 횡적으로 아우르려고하는 걸로 보일 것이다.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제 3의 눈이 모든 것을 보는 눈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그 조건은 내가 종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을 떄, 횡적인 확장이 일어날 때이다. 그러니까 정반대여야만 한다. 나의 물리적인 두눈으로 보는게 아닌 내 눈이 아닌데도 보이는 것들을 말한다. 옆에서 말하고 행동하고 몸짓하니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실제로 보지..
기억하자 두가지다. 하나는 부정적인 것을 선행하는 원하는 마음이고 하나는 기쁘고 신바람나는 원하는 마음이다. 그냥 한마디로 원하는 마음에도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목표 설정에도 실력이 있다. 기술이 있다. 잘못된 것이 있고 잘된 것이 있다. 운전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운전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고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것을 단지 '원하는 마음'을 분명히 가졌는데 왜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는지 억울해 하는 마음은 미토콘드리아가 만들어지던 고생대 시절의 생각과 비슷하다. 아니 내가 걸어간 것도 아니고 운전을 분명히 했는데 왜 사고가 나냐고!!!! 내가 분명히 운전을 해서 가려고했는데 왜 사고가 나!!! 다른사람도 아닌 바로 내가 했는데!! 사람많고 차많고 번잡한 곳으로 목표를 잡..
용서라는 단어는 뭔가 하는 순간 모든 것이 풀려서 따뜻한 섬광의 빛이 온세상에 퍼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딴건 영화에서나 문학적 표현에서만 허용되어야만 하는 압축적 표현이다. 비행장에서만 비행이 허용되듯, 현실에서는 허용되서는 안되는 단어이다. 무시하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말그대로 불편하다. 거기에 더해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라는 말을 들을 때 토가나온다.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도 진리가 아니다. 용서는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그 아름다운 단어에 기대어 지금 당장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하찮은 발버둥에 불과하다. 왜냐면 모두다 해결책으로써 용서를 해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강제로 설득하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고통을 당해보지 않..
내 생각이던 주변에 있는 어떤 새끼가 말을 했건 '거봐 그럴 줄 알았어', '역시나', '역시 너는 아니야' 라는 생각이 침입할 때가 있다. 제목을 잘 보자. 그 쓰레기같은 생각은 '틈을 보고' 들어온다. 절대로 아무때나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드가 열렸을 때 들어오는 펀치다. 잘보면 정말로 그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는 상황에만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말이 틀리지 않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괜히 그것을 아니라고 부정하면 더욱더 나를 갉아먹고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이 쓰레기 생각이 들어올 때는 정확히 그럴만한 상태일 때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을 때 정확히 이 상태만 그럴만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을 노리고 있기에 지금만 그렇다. 조금만 지나면 당연해 보였던 그 상태..
내가 갈때마다 주차공간이 비어있기를 상상하고 바라면 무조건 이루어진다라고 말하는 시크릿류의 생각은 기만적이다. 한번 생각해봐라. 내가 가니까 주차공간이 비어있기를 바래봐라. 순간은 기분이 좋지만 그 즉시 의심이 달라 붙는다. 만약 안되면? 안되면 내가 공부하고 찾아본 모든 영적인 내용들이 다 사기가 되는데 어쩌지? 영성 사기꾼들은 상상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허접해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는 것이라고 말 할 것이다. 그말도 절대로 틀리지 않다. 누군가는 벽을 주먹으로 깨부술 수 있다. 누구는 벽이라는 당연한 물리적 작용에 반작용을 느껴 주먹이 아픈것이다. 물리법칙을 뛰어넘었다고 해서 대단한 것이 아니다. 치트키를 쓰고 게임을 이겼다고 대단한게 아니다. 오타쿠들은 대단한게 아니다.( 이전 글 오타쿠와 사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