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영성(종교)는 영원한 딜레마다.
나를 위할지, 남을 위할지.
애덤스미스가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둘다 썼다고해서, 그 사람이 두가지를 모두 합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엔 반드시 대립하는 두가지를 초월하는 한가지의 개념이 존재한다.
그 개념은 '게임'에 있었다.
돈은 곧 생존, 나자신을 위한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라면
영성이란 한마디로 죽음이자 자살이다. 나를 떼어내서 남에게 이득을 줄 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성을 이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며 자기자신을 희생에 던지는 행위를 이해하는 것은 생존을 절대 명령으로 알고있는 생명체로써 설명 불가능한 것이다.
오글거리며, 합리적이지 않다.
두려움이 있는데도 나아가는 종교적 태도는, 절대적으로 잘못된 개허접한 방식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최대의 개쓰레기같은 정신 조작이다.
두려움을 가지고 움직인 모든 결과는 절대적으로 패배하고 절대적으로 망하게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종용하는 것은 범죄다.
가상적이며, 사기적인 개념이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체는 자기자신을 위하는 생존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만하는 것인가?
하지만 유일하게, 게이머는 다르다.
게임이라는 개념은 '지나친 생존'을 오히려 과잉으로 본다.
즉 생존의 확보가 지나칠 때 '지루함'이라는 것을 느끼게된다.
지루함은 실질적인 고통이며 그것을 덜어내지 않는 한 정말로 죽음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자기자신을 위해서, 자기자신을 버려내는' 것이 합리적이며 납득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지루하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줄이는 자살행위 즉 게임의 난이도를 높이는 것을 분명하게 긍정한다.
강아지를 같은 팀으로 넣는다던가, 나자신뿐만아니라 친구를 케어함으로써 난이도를 높인다.
난이도를 높이는 작업은 더 큰 보상을 위한 것이어야하며
또한 내가 충분히 감당가능한 자원이 있기 때문이어야한다.
큰 두려움이 올라올정도가 아니라, 약간의 두려움을 통해 신이나고 재미있는 정도가 게임의 범주다.
게이머의 방식으로 내가 나자신을 위해서 남을 위할 때.
오글거리지 않는다.
남을 위할떄도 있지만 내가 자원이 없을 땐 또 남을 위하지 않는 합리적이며 지속가능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생존의 확보 통해 에너지를 얻어낼 때마다, 지루함을 벗겨내기위해 게임에 참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남을 돕게 되는 방식이다.
남을 직접적으로 돕는 것만이 진짜 착한 것일까?
내가 스스로 난이도를 높여서, 더 어려운 던전에 참여하고 더 어려운 악마를 잡아낸다면?
그 악마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던 남들이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닌가?
어째서 남을 돕는 것만이 남을 돕는 것인가?
남에게 혜택을 주는게 아니라, 나에게 의도적 벌칙을 줌으로써 오히려 최대효과의 도움을 줄수 있는 것이다.
내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남을 돕는 것이 100% 연결된 체인안에 있다.
진짜 돈을 벌기 위해선,
그리고 동시에 진짜 사람을 돕기 위하려면
신나는 것에 투자해야한다.
신날 만큼만 투자해야한다.
어려움을 즐기는 사람에게 투자해야한다.
게이머 혹은 같은 의미에서의 모험가가 되어야한다.
만약 신이라면 자기가 가진것을 '과잉'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풍성하고 대단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덜어냄으로써 남을 높이는게 아니라,
덜어냄으로써 자기자신을 또 다시 높이는 재귀적 개념이 가장 옳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던 즐겨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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