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몰라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있다.

알려고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음으로써 모르는 상태를 유지하여 일이 벌어졌을 때 알리바이를 만들고 당연함과 억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책임에서 완전히 떨어지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어떠한 잘못도 내 잘못이 아니게 되는 방법이 있다.

몰랐는데 어쩌라는 거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어쩌라는거야?

부르지 않은 결혼식에 갈 수 없는 것처럼

인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은 양자 역학처럼

우주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계약서라는 것을 쓰기도 한다.

모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기록을 해놓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록을 내가 동의하고 계약을 했다는 것 또한 '잘 모르는 것'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만이다.

 

마치 초딩들의 절대성배 '반사'라는 단어처럼 무적의 방법론이다.

이런 신의 경지에 올라가 있는 사람에게 계약서를 들이밀거나 법으로 처벌한다던가, 논리를 강조하거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하극상이자 신성모독이다.

세계관을 형성해놓았기 때문에 그것에 반발하는 것은 세계를 무너뜨리는 큰 대역죄이므로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

그렇게 잘 잊었던 그들이, 남아있는 기억의 공간에 그것을 잊지않고 차곡차곡 쌓아둔다.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현실인가 가상인가?

지구인가 우주인가?

 

이러한 '꿈꾸는 자들'을 어떻게 상대해야하는가?

 

예로부터 모든 해결책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였다.

드라이버와 나사가 맞물려 돌아가듯 똑같이 상대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모든 창조가 암수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듯 완전히 똑같다기보다는 역으로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현실을 잊고 우주로 여행을 떠날 때,

그들을 붙잡으려하니까 고통을 받는 것이다.

 

우주적 논리로 다가올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똑같이 '잊는 것'이다.

 

그 우주인들은 현실과 지구를 잊어버렸지만

우리는 그들을 잊어버리면 된다.

 

우주의 논리가 너무나도 강하고 강해보이지만

결국엔 현실에는 간섭할 수 없는 가상의 것, 흐물흐물한 것이다.

 

그들을 잊어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쉽게말해 해달라는대로 모두 '허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갓난아기에게 모든 것을 허용하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갓난아기는 세상에 자기마음대로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움직일 수 있는 현실적인 능력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못됀 갓난아기처럼 '그럼 팔 한쪽 잘라줘' 라던가 '내일 목을 잘라줘' 라는 극단으로 치우친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귀신이기에 귀신같이 그것을 행하지 못하도록 세상이 움직인다.

현실에 있지 않은 존재가 현실이 아닌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현실이 아니다.  

그들을 허용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가상이기에 내버려둬도 괜찮다는 것이다.

 

세상을 지배하고싶은 그들에게 세상을 내맡겨도 된다는 것이다. 정말로 생사여탈권을 줘도 된다는 것이다.

지구가 우주에 뒤덮여있더라도, 지구가 우주에 복종하여 시키는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우주가 되도록 해도 괜찮다.

그들이 1등이 되고 엄청난 이득을 얻어도 괜찮다.

그것은 가상의 것이기에 우주의 수많은 행성들처럼 흩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현실에 발 디딘만큼만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생명에 발 디딘만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이 주는 사소한 고통은 어쩌면 당연한 것에 불과하다.

내 욕심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자.

현실은 원래 고통과 물리적 저항감이 있는 것이다.

그들도 그저 자연에 불과하다.

우주는 그대로 놔둠으로써 완성된다.

 

2등으로 존재하는 것이 생명이다.

더크고 광활한 우주보다도 소중한 것이 지구다.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자.

평생 우주의 먼지로 살도록 허용해주자.

그리고 더럽고 질척거리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지구에서 살아가자.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라이프코리아트위터 공유하기
  • shared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