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느끼는 원함은 돈을 원하는 것과 같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원함은 현물을 원하는 것과 같다. 왜 두려움을 느끼지 않냐면 내 두려움 감정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감정을 해소했다는게 뭐냐면 그냥 술먹고 망각한 느낌이 아니라 감정을 충분히 느껴주고 대화를 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하면 안되는 일인줄 알고 '앞으로 절대 이 감정을 느끼도록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 라는 마음을 먹는게 해소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해소가 된다. 딱히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말이다. 그냥 듣는게 아니라 내편이 되어주고 상황을 바꾸려고 마음먹어주는 상대방이라면 해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넘에게 맡기거나, 기다리거나 하는게 아니라 그 상황을 해결할 도구를 직접 내 스스로 움직여 조달하게 된다. 너무나도 ..
생각하기/스피릿 툴 검색 결과
내가 싫어하는 일을 거부하지만 그것이 일어났을 때는 받아들이고 일어나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어떻게 가능할까? 싫어하긴 하지만 일어나는 것 정도는 받아들인다?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말도 안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적당한 싫어함도 가능하다. 거부하는데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적당히만 막아서는 것. 그건 냄비뚜껑에 구멍을 뚫어서 증기가 조금은 세어나가도록 놔두는 것이다. 절대 벌어지면 안된다며 모든 구멍을 막는 순간 오히려 터진다. 일어날 때 일어나는 것은 허용해야 한다. 그 힘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싫어하는 것이 없는 세상을 좀더 제대로 인식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기 위해서다. 또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유연함은 좀 더 나은 변화를 이끌어낸다.
( 여기서 말하는 것은 에너지가 높아서 자연스럽고 장난스러운 신의 행동을 하게 될 때나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두려움을 느껴서 당연히 행동하지 않아야하는 때를 제외한 '고민될 때'를 말한다. ) 에고는 행동 하라고도 하고, 하지 말라고도 한다. 내 안의 신은 에고가 행동하라는 것을 하지말라고 할 때도 있고, 먼저 나서서 행동하라고 할때도 있다. 대체 어떻게 구별하는가? 둘다 똑같이 머리속에서 내 목소리로 내 언어로 가장 익숙하고 가장 가까운곳에서 말하고 있다.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너무 잘될 것 같고 기쁘고 환상적인 것들은 모두 에고의 명령이다. 행동하려고하는데 두렵고 어렵고 뭔가 이상하고 찝찝한 마음이 들 때 그 더러움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 행동은 해야한다. 나를 엿먹이기로 작정..
필요는 나에게 있어야만 하는데 없는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을 할정도로 내가 윗사람이다. 원래 있었다가 빼앗겼을 때의 느낌이다. 그래서 강하게 원하게 된다. 소원은 바래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나랑 어울리지는 않지만 원하게 되는 것이다. 필요에는 에고가 끼어있지만 소원에는 에고가 없다. 밖이 추워서 집에 있는 것과 재밌는 게임을 하기위해 집에 있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추울 땐 집이 필요할뿐 충족되는순간 쓸모가 없어진다. 거들떠도 안보고 당연한 권리가 된다. 집자체를 원할 때는 원하는 것을 충족한다음에도 진행형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소원만 이루어진다. 돈은 절대로 소원이 될 수 없다. 언제나 2차적이고 간접적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필요할 뿐이다. 종이쪼가리의 냄새까지 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요..
살고있는 집이 너무 싫어서 다른 집으로 가고싶은 것과 다른 집이 더 좋아서 가고싶은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살고있는 집도 좋고, 다른 집은 더좋은 느낌을 가지기 위해선 반드시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이해해야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가 더 좋은 것을 형성하고 만들어낸다. 문제가 없이 더 좋은 것이란 성립불가능하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 가지고 있는 상태를 긍정하지 않는이상 더 좋은 것을 가질 수 없다. 문제를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만 더좋은 것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