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양용 자동차는 어디든지 간다고 할 수 있다.

육지도 바다도 갈 수 있기 떄문이다.

하지만 하늘을 날지는 못한다.

앞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말이 곧 '중용'의 미덕이자 인터페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개념을 더럽힐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기독교는 '힘든 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다며 고난을 자처한다.

분명히 anywhere 라는 개념을 말했는데, 힘든 곳만 간다고 말한다. 

힘든 곳과, 기쁜 곳을 구별하지 않아야하는데 말이다.

 

또한 "어디든지 여행하는" 모험가라고 말하면서 스위스에서 10만원짜리 점심을 먹고 하와이에서 부동산 임대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좋은 것이라면 어디든지 골라 처먹겠다는 심보를 anywhere 라고 볼수는 없는 것이다.

 

여러가지 부서를 공산주의 방식으로 '통합' 한다는 의미도 anywhere라고 볼 수 없다.

육지와 바다를 모두 운전할 수 있다는 개념과 육지와 바다를 하나로 샴쌍둥이마냥 뭉쳐버리겠다는 시도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더하는 모든 방식은 중용이 아니다.

퍼즐, 레고, 믹스, 조립, 조인트, 연결은 모두 틀린 개념이다.

각각의 개별존재들은 그대로 있되, 어떤 개념이 거기를 자유롭게 건너다닐 수 있게 되어야한다.

 

또한 반반치킨처럼 양쪽에서 핵심만 조금씩 가져오는 방식도 anywhere라고 볼 수 없다.

수륙양용 자동차는 둘다 그상태로 운전이 가능한 개념이어야한다.

자동차를 1시간 타고, 배를 1시간 탔다고해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할 수 없다.

태극의 원리처럼 힘들때 쎄게 일하고, 쉴때 미친듯이 노는 방식은 anywhere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일과 놀이를 구별하지 않는 "꿈"이 수륙양용 자동차다.

태극은 어느정도는 높은 개념이긴하나, 궁극적이진 않다.

 

 

 

1. 힘든 일만 하는 착한 방식은 anywhere가 아니다.

2. 좋은 것만 골라먹는 체리피킹은 anywhere가 아니다.

3. 더하고 통합하는 것은 anywhere가 아니다.

4. 태극의 원리처럼 반반 순환하는 것은 anywhere가 아니다.

 

 

B도 아니다. A도 아니다.

A+B도 아니다. A and B도 아니다. A or B도 아니다.

오직 정답은 A = B다.

똑같다는 말이며 관심없다는 말이며, 상관없다는 말이다.

 

양자역학의 원리처럼 두 장소에 그 즉시 존재해야한다.

언제 상황이 바뀌어도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는 개념이어야한다.

정말로 말그대로 어디든지 갈 수 있기에, 무엇이든 상관없는 상태여야한다.

 

A와 B를 구별하지 않으려면, 마치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봤을 때 그냥 하나처럼 보이듯이

초월하고 높아져야만 한다.

 

인간도 여러가지 세포로 이루어졌는데 그냥 하나로 봐버린다.

분할해서 보면 어떻게든 분할해서 볼수있고, 

하나로 보려면 어떻게든 하나로 볼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을 하나로 볼 수있는 시선으로 계속해서 높아져야한다.

수륙양용 자동차를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은 육해공 모두 갈수있는 자동차를 만들어야한다.

또 그다음은 육해공 우주까지 갈 수 있는 자동차여야한다.

계속해서 한번에 싸잡아 하나로 보는 곳으로 올라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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