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horse)이 말이라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만약에 인간들이 필연적인 본성 탓에 죄를 짓는 거라면,
악한 자들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사람들은 스피노자에게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면 스피노자는 이렇게 응수한다.
< 사실 말이 인간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인간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개에 물려서 미치게 된 자는 용서받아야하지만, 그가 미쳐 날뛰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
용서받을 수는 있지만, 잘못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 < 스피노자의 동물우화 > p104~ 신이라는 도예가
스피노자가 하는 이야기는 운명론에 가까운 이야기다.
점토가 도예가의 역량에 달려있듯이, 우리는 신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악하고 병든 사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조차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님을 근본적으로 용서한다.
짐승이 짐승의 본능에 따라 행동한 것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짐승을 짐승 취급하듯이 다뤄도 된다는 잔인함을 품고있다.
개가 죽일듯이 짖어도, 크게 감정이 생기지 않지만 달라들면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동물들을 대할 때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방식이다.
그렇다고해서 동물을 무조건 잔인하게 죽이는게 아니라 공생하기도 하고 필요할 때만 잔인하게 대하는 느낌이다.
이것은 용서인가? 잔인함인가?
굉장히 애매하다.
이것은 그저 '이해'이고 정화의 작업이다.
범죄자가 되기 쉬운 환경에서 자라 범죄자가 되어버린 사람을 이해한다면
그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데 집중할 수 있다.
짐승이 되어버린 사람에 대한 태도는 그냥 "짐승이 있다" 라고 인식만하면 되는 것이다.
위협에 대해 보호하는 정도, 관리하는 정도 지금 우리가 곰이나 늑대에 대해 하는 일 정도만 하면 될 뿐이다.
어떠한 마음도 감정도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에서도 악령들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갖추고있다.
오히려 악마들이 자기들에게 맞서싸워주기를 바라는 "Takedown"이라는 노래를 주구장창 부르게 만든다.
자기자신들도 어떤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어서 악한짓을 하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기들이 공격받을 때야말로 오르가즘을 느끼고 승리하는 순간이 된다.
짐승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힘이 쌔고 강하기 때문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 루미는 오히려 진우와 사랑에 빠진 듯하고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이해해보려고한다.
악마들도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이해하고 힘듦이 있음을 알게된다.
그때 비로소 정화가 이루어진다.
그 이해는 진우가 스스로 죽으면서 종결된다.
처벌은 받되, 이해받는 순간.
너무나도 공정하기에 모든사람의 마음이 정화된다.
그것이 사실은 악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며, 존재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스피노자의 정화와 케데헌의 퇴마과정은 너무나도 유사하다.
그 과정에는 근본적이며 깊은 슬픔이 있다.
너무나도 슬퍼서 몸이 떨릴 정도의 미안함이 느껴진다.
자연스레 다시는 짐승을 만들지 않도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기위해 노력하게 된다.
영화나 애니에서 진심으로 슬피울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의 감정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케데헌에서 루미가 데몬왕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릴 때와 같은 슬프면서도 다짐하여 이겨내는 상쾌한 그런 느낌을 가져야된다는 것이다.
